‘자만추(자유로운 만남 추구)’와는 거리가 먼, 아주아주 의도적인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낯가림이 있는 아줌마가 커다란 장바구니에 몇 권의 그림책과 활동지, 채색도구를 들고, 필기구와 간식을 챙겨 온 7명의 청소년과 동인동 세대공감에서 만났습니다. 하품 날 법한 문학 작품과 크게 관심 가진 적 없는 작가들의 삶을 탐구한 후 길 위로 나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저 독서모임이나 인문학 모임인 줄 알고 온 학생도 있고, 문학여행동아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중구난방, 호감과 비호감 사이에서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연결해야 하는 일이 낯가림 심한 아줌마 선생에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13~19세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대부분 권유로 참여한 거라 더욱 부담된 건지도 모릅니다. 카드로 자기를 소개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나누며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을, 내내 반짝거리는 눈으로 참여했던 남학생에게 읽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슬쩍 학생들의 낭독을 좋아하는 사심도 담았습니다. 앞으로 이 여정에서 친구들은 자주 무언가를 읽고, 말하고, 그림이나 글로 표현할 텐데 그 첫 포문이 열린 것입니다. 첫 만남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점점 쉬워질 것이니 열 번 같은 한 번의 이 만남에 공을 들입니다. 탱탱한 마음의 긴장은 서서히 다른 이름을 가질 테니까요.
권정생, 이육사, 퇴계 이황 세 분과 관련된 그림책, 수필, 시, 전기를 다룬 소설, 명언 등을 읽으며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선비 체험을 위해 사군자도 그리고 다도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 달에 2번, 총 7번의 실내 활동 후에 2025년 10월 10일 드디어 문학여행동아리 “노상”이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자신을 향한 출사표이기도 하고요.
첫 여행지는 안동으로, 권정생 살던 곳, 권정생 동화나라, 소호헌, 이육사 문학관과 육우당, 도산서원 등에 머물렀습니다. 방문지에서 해야 할 미션수행 하느라, 적지 않은 걸음을 걷느라 쉽지 않았을 겁니다. 친구들의 체력이 생각보다 약해 틈새에 넣었던 몇 곳은 방문하지 못했지만 안동의 명물 안동찜닭도 먹고, 산속 한옥카페에서 여유도 부렸습니다. 첫 여행치고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실내에서 접했던 작가의 흔적과 작품을 눈으로 재차 확인하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리면 밤이 내려앉는 도산서원의 야경과 숲길을 걸으며 맡았던 바람 냄새가 기억나면 좋겠습니다.”라는 인사로 1기 활동의 막을 내렸습니다.
문학여행동아리 “노상”은 청소년들이 길 위에서 자신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꿈틀협동조합”의 첫 활동입니다. 첫째, 길 위에서 생각하고, 둘째 길 위에서 자신의 상(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셋째, 노상(자주) 모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흔히들 백문이 불여일견(百問不如一見)이라고 하지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한 번 보는 일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일이 백 번 듣거나 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경험을 통해 그간 쌓은 백문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되듯 이 앎과 깨달음과 질문의 반복적인 쌓기를 통해 한 사람의 세계가 넓고 깊고 견고해지리라 믿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삶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든 결국 자신을 탐구하여 자신을 알아가야 할 텐데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응당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여행동아리 “노상“은 입시와 학교생활에 갇힌 청소년들이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내면의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눈을 뜨게 하는 일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대구,경북의 청소년들이 시끌벅적하게 다양한 동아리를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