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연탄 한 장>
도현이의 국어공부를 봐주다 문득 발견한 시 한 편 함께 나눕니다.
안도현님.. 그러고보니 우리 도현이와 이름이 같으시네요. ^^
시가 시로 가슴에 저며들어 눈물 한 방울 고이기엔 아직 도현이는 어리겠지요.
눈이 내리는 희한한 3월동안... 도현이는, 지겹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빨리 끝내고 싶은.. 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불이 옮겨 붙고 나니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그런 경험을 저는 요즘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연탄이 되고자 시작한 일도 아니고, 연탄 한 장의 분량도 안되는 주제를 알기에 감히 그리 생각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함께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다보니.. 어느새인가 나도 밥이 되고 국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따스한 밥이 되고 국물이 되는 일이... 한 그릇의 영양분이 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의 한 구절과 같이, 마치 찬밥처럼 방에 담긴 우리 아이들을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온전히... 덥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일 아침에도, 따끈한 밥을 지어 먹여야겠습니다.